
스마트폰 속 인공지능이 클라우드 서버를 거치지 않고 기기 안에서 직접 작동하는 ‘온디바이스 AI’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 삼성전자가 6월 23일 업계 최초로 온디바이스 AI에 최적화된 차세대 모바일 저장장치 ‘UFS 5.0’ 개발을 완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9세대 V낸드를 기반으로 순차 읽기 속도 10.8GB/s를 구현해 전작 UFS 4.1 대비 약 2배 빨라졌고, 전력 효율은 40% 개선됐습니다. 단순한 메모리 스펙 향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발표는 AI가 어디에서 작동하느냐를 둘러싼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한 조각입니다. 오늘은 UFS 5.0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온디바이스 AI가 우리 손안의 기기를 어떻게 바꿀지를 짚어보겠습니다.
UFS 5.0이 무엇이고 왜 빨라졌나
UFS는 ‘Universal Flash Storage’의 약자로, 스마트폰과 모바일 기기에 들어가는 고속 저장장치 규격입니다. 우리가 사진을 찍고 앱을 열고 영상을 재생할 때, 그 데이터를 읽고 쓰는 속도를 좌우하는 핵심 부품입니다. 삼성전자의 UFS 5.0은 이 규격의 차세대 표준을 업계에서 가장 먼저 구현한 제품입니다.
핵심 수치를 보면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순차 읽기 속도 10.8GB/s, 순차 쓰기 속도 9.5GB/s로, 기존 UFS 4.1 대비 약 2배 이상 빨라졌습니다. 1초에 10기가바이트가 넘는 데이터를 읽어낸다는 것은 고화질 영화 여러 편 분량을 눈 깜짝할 사이에 불러온다는 의미입니다. 이 속도는 9세대 V낸드(V9)라는 삼성의 최신 적층 메모리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속도만 오른 게 아닙니다. 전력 효율은 UFS 4.1 대비 40% 개선됐고, 패키지 크기는 16.7% 작아졌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회로의 동작 신호를 차단하는 ‘클락 게이팅’, 회로별로 최적 전압을 적용하는 ‘멀티 전압’ 같은 기술이 적용됐습니다. 더 빠르면서 더 적게 쓰고 더 작은,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설계입니다.
관련하여 반도체 기초 용어 한 번에 정리하기에서 배경을 더 자세히 다뤘습니다.
왜 하필 ‘온디바이스 AI’를 위한 메모리인가
삼성이 UFS 5.0을 ‘온디바이스 AI 최적화’라고 강조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온디바이스 AI란 인공지능 연산을 클라우드 서버가 아닌 기기 자체에서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챗봇에게 질문하거나 사진을 보정할 때, 데이터를 외부로 보내지 않고 스마트폰 안에서 바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이 방식이 작동하려면 거대한 AI 모델을 기기 안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 순식간에 메모리로 불러와야 합니다. 수 기가바이트에 달하는 모델 파라미터를 빠르게 읽어들이지 못하면 AI 응답이 느려집니다. UFS 5.0의 10.8GB/s 읽기 속도가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AI 모델을 메모리로 적재하는 시간이 짧을수록 사용자는 더 즉각적인 응답을 경험합니다.
전력 효율 40% 개선도 같은 맥락입니다. 온디바이스 AI는 연산량이 많아 배터리 소모가 큰데, 저장장치가 전력을 적게 쓰면 그만큼 AI 기능을 오래 쓸 수 있습니다. 결국 UFS 5.0은 ‘온디바이스 AI를 실제로 쓸 만하게 만드는’ 인프라 부품인 셈입니다. AI가 똑똑해지는 것 못지않게, 그 AI를 받쳐주는 하드웨어의 진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클라우드 AI와 온디바이스 AI, 무엇이 다른가
지금까지 우리가 써온 AI 대부분은 클라우드 방식이었습니다. 질문을 입력하면 데이터가 인터넷을 통해 거대 데이터센터로 전송되고, 거기서 연산한 결과가 다시 기기로 돌아옵니다. 강력하지만 인터넷 연결이 필수이고, 개인 데이터가 외부로 나간다는 점에서 프라이버시 우려가 있었습니다.
온디바이스 AI는 이 구조를 뒤집습니다. 연산이 기기 안에서 끝나기 때문에 인터넷이 없어도 작동하고, 응답 지연(레이턴시)이 거의 없으며, 개인 데이터가 기기를 벗어나지 않아 보안에 유리합니다. 통역, 사진 편집, 음성 비서, 문서 요약 같은 일상 기능을 비행기 안에서도, 지하에서도 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온디바이스 AI가 클라우드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합니다. 초대형 모델이 필요한 복잡한 작업은 여전히 클라우드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업계는 두 방식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AI’로 가고 있습니다. 일상적이고 민감한 작업은 기기에서, 무거운 연산은 클라우드에서 처리하는 분업입니다. UFS 5.0은 그중 기기 쪽 역량을 끌어올리는 핵심 퍼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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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넘어, XR과 AI 웨어러블로
삼성은 UFS 5.0의 활용처를 스마트폰에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향후 플래그십 스마트폰은 물론, XR(확장현실) 헤드셋과 AI 웨어러블 같은 차세대 디바이스로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온디바이스 AI가 적용될 기기의 지형이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XR 헤드셋은 눈앞의 가상·증강 현실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해야 하므로 막대한 데이터를 순간순간 읽고 써야 합니다. 저장장치 속도가 곧 몰입감의 질을 좌우합니다. AI 웨어러블, 예컨대 AI 기능을 탑재한 안경이나 손목 기기 역시 작은 몸체 안에서 빠른 처리와 낮은 전력 소모를 동시에 요구합니다. UFS 5.0의 ‘작고 빠르고 효율적인’ 특성이 정확히 들어맞는 영역입니다.
이런 확장은 삼성에게 새로운 시장을 의미합니다.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든 가운데, XR과 웨어러블은 메모리 수요의 새로운 성장 축이 될 수 있습니다. 부품 기업이 단순히 더 빠른 칩을 만드는 데서 나아가, 차세대 기기 생태계 전체의 성장에 올라타는 전략입니다. 최대 용량 1TB를 지원한다는 점도 데이터 집약적 차세대 기기에 적합합니다.
2026년, 하드웨어 최적화가 승부처가 된 이유
전문가들은 2026년을 AI 산업의 전환점으로 봅니다. 알고리즘 혁신 경쟁을 넘어, 실제 산업 환경에서의 대규모 적용과 하드웨어·시스템 최적화가 본격화되는 해라는 진단입니다. UFS 5.0 발표는 이 흐름을 정확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지난 몇 년간 AI 경쟁의 초점은 ‘더 똑똑한 모델’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델이 일정 수준에 오르자, 이제는 그 모델을 ‘어떻게 실제로 빠르고 싸게 돌리느냐’가 관건이 됐습니다. 같은 AI라도 어떤 메모리, 어떤 칩, 어떤 시스템 위에서 작동하느냐에 따라 속도와 비용, 사용자 경험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드웨어 최적화가 AI 경쟁력의 새로운 전장이 된 것입니다.
이는 메모리 강국 한국에 기회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강점을 가진 메모리 분야가 AI 시대의 핵심 병목으로 떠오르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AI 인프라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UFS 5.0의 ‘업계 최초’ 타이틀은 그 경쟁에서 한발 앞서 나가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자세한 분석은 AI 반도체 전쟁, 한국의 위치는을 참고하세요.
정부와 기업, AI 생태계에 쏟아붓는 투자
하드웨어 진화는 기업 혼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2026년 한국 정부는 AI와 디지털 전환에 막대한 예산을 배정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각각 역대 최대 규모인 2.2조 원과 5.5조 원 규모의 R&D 투자를 계획했고, 중소기업의 AI·디지털 전환 지원에만 신규 138억 원이 투입됩니다.
민간의 스타트업 발굴도 활발합니다. KT는 ‘K-PATH 2026’ 공모로 고객의 AI 전환을 함께 이끌 스타트업을 찾고 있고, 삼성전자는 ‘C랩 아웃사이드’ 9기에서 AI·로봇 등 8개 분야 30개사를 선발합니다. 대기업의 인프라와 스타트업의 혁신을 결합하려는 시도입니다.
이런 투자가 의미 있는 이유는, AI 경쟁력이 단일 제품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두께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UFS 5.0 같은 세계 최고 부품이 나와도, 그것을 활용할 디바이스 제조사와 소프트웨어 기업, 응용 서비스 스타트업이 함께 자라야 진짜 산업이 됩니다. 부품-기기-서비스로 이어지는 사슬이 동시에 굵어질 때 비로소 온디바이스 AI 시대가 현실이 됩니다.

소비자에게는 무엇이 달라지나
기술의 진보는 결국 사용자 경험으로 증명돼야 합니다. UFS 5.0이 4분기부터 양산되어 플래그십 기기에 탑재되면, 소비자는 몇 가지 변화를 체감하게 됩니다. 먼저 AI 기능의 반응 속도입니다. 사진 보정, 실시간 통역, 음성 비서의 응답이 지금보다 훨씬 빠르고 매끄러워집니다.
둘째는 오프라인 활용성입니다. 인터넷 없이도 강력한 AI 기능을 쓸 수 있게 되면, 데이터가 약한 환경이나 해외에서도 통역과 검색, 요약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프라이버시입니다. 개인 데이터가 기기 안에서 처리되므로, 민감한 정보를 외부로 보내지 않고도 AI의 편의를 누릴 수 있습니다.
다만 신기술이 보급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4분기 양산 후에도 실제로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탑재되어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는 일정한 시차가 있고, 초기에는 고가 기기에 먼저 적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쓰는 기기는 점점 더 똑똑해지고, 그 지능은 클라우드가 아니라 내 손안에서 작동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블로거 시각
AI 뉴스라고 하면 보통 더 똑똑해진 챗봇이나 화제의 모델 이야기가 주목받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메모리 속도 2배’ 같은 소식이야말로 진짜 변화의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모델 뒤에는 언제나 그것을 묵묵히 받쳐주는 하드웨어가 있고, 그 하드웨어가 한 단계 도약할 때 비로소 우리 일상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온디바이스 AI는 ‘인터넷 없이도, 내 데이터를 지키면서, 즉시’ 작동하는 AI를 약속합니다. 이건 편의를 넘어 디지털 주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내 정보를 어디서 처리하느냐가 곧 내가 기술을 얼마나 통제하느냐와 직결되니까요. UFS 5.0은 작은 칩 하나지만, 그 안에는 AI가 클라우드에서 내 손안으로 내려오는 시대의 방향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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